물 한 방울의 위력

보편적인 물의 이미지 또는 그 기능은 무엇일까요? 먼저 물은 생명의 물질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그렇듯이 생명의 시초, 생명의 탄생은 물로부터 시작되며 생물학에서도 생명체의 발생이 바닷물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식물의 씨앗을 싹 틔우기 위해서도 물은 필수적인 물질입니다.

화성과 같은 별에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또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가의 판별 기준도 물의 존재 유무입니다. 그런데 피가 생명의 상징인 동시에 죽음의 상징이듯이, 물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동시에 생명을 없애는 역할을 합니다. 태양이 바다에서 뜨고 바다에서 지듯 삶과 죽음은 물이라는 동일한 접점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사람이 물을 마시기도 하지만 물이 사람을 마시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물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그것은 더러운 것, 거짓된 것, 죄악 등을 깨끗이 씻어 없애는 정화의 기능입니다.
관음보살도의 관음보살은 왼손에 정병이란 것을 들고 있습니다. 자비로운 보살께서 정병에 담긴 가장 깨끗한 물 즉, 감로수를 이용하여 중생들의 고통이나 목마름을 없애 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명의 물과 정화의 물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치성을 드릴 때는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했는데 그것도 이런 이중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갠지스 강에서 하는 목욕 의식도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더럽기 짝이 없는 물이라는데 그들은 성수라고 하면서 몸을 씻고 그 물을 마시고 화장한 뼛가루조차 그 물에 뿌립니다. 물로 하는 정화 의식이라면 기독교의 세례나 침례를 들 수 있는데 몸 전부가 물에 잠기는 침례 의식에는 세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것은 매장을 의미하며, 다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물에 들어감으로써 옛 사람은 완전히 죽어서 매장된다는 뜻이고, 물에서 나올 때는 새 사람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죄악으로 더럽혀진 사람이고 새 사람은 영적으로 정화된 사람, 승화된 사람입니다. 이런 물의 정화 기능이 글로벌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것입니다. 개인의 정화는 세례나 침례 의식으로 물에 의한 정화가 가능하지만 죄악이 지구에 가득하다면 홍수라는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개인은 그저 홍수에 휩쓸리는 나뭇잎처럼 흘러가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것일까요? 시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순수한 한 방울의 물은 대양을 정화시키기에 충분하며 불순한 한 방울의 물은 우주를 오염시키기에 충분한 것” 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믿어도 될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노력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위력적인 한 방울의 물이 될 수는 없을까요?

Daniel Kim
CEO